[에세이] Duck's Free (자유를 위해)


배정받은 새로운 학교로 처음 등교하던 날,

그날은 아침부터 일찌감치 걸어갔다.

버스노선도 모르고 심지어 찾아가는 길도 몰랐던 그 때

직감만으로 무작정 발을 옮겼더니

목적지까지 다다르는데 성공하긴 했더랬다.



학교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층수를 분명 눌렀는데

눌러진 층수를 그냥 지나쳐 다시 1층으로 돌아와 버렸다.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는 1층에서 새로운 승객을 맞이했고

말 그대로 나는 운반박스로부터 쫓겨났다.


목적지를 잃은 발걸음을 이끌고 바깥을 둘러보는데

자가용들이 즐비하게 서있는 주차장 근처에서

멀지 않은 아스팔트 바닥에 웬 오리가 앉아있었다.

한 마리가 아니고 네, 다섯 마리 정도 있는 듯 보였다.

처음에 언뜻 보기엔 옛 할머니집의 거실장 위에 올려진

목각으로 된 원앙새 모형인 줄 알았다.


아무 생각 없이 설렁설렁 걸으며 오리무리 쪽으로 다가가니

오리들의 머리에 무언가 부착되어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반창고, 스티커, 셀로판 테이프 등...

이것들의 출처가 어디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벙찐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그 때,

초등학교 저학년 즘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갑자기 어디선가 튀어나와 오리 사이를 휘집어 다니며

무차별 셀로판 테이프 공격을 행했다.

오리들은 주차장 근처를 이리저리 헤매며

남자아이에게 속수무책으로 머리를 내주며 테이핑 당하고 있었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가슴 속의 뭔가 끓어올라서

날래게 오리 사이를 뛰어다니던 남자아이를 팔목을 잽싸게 낚아채

손에 들려있던 모든 공격물품을 뺏었다.

흠칫 놀라며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남자아이에게

'이제 모든 상황은 끝' 이라는 마무리 멘트를 하며

부적절한 어린이의 행동을 올바르게 지적하고 교정하는

어른의 책임감을 드러내려 했으나

남자아이는 이대로 끝낼 성이 아니었나 보다.


멱살을 잡아채고 머리카락을 잡아 뜯고 거센 저항의 행동력에

단지 아이보다 키가 크다는 조건은 전혀 핸디캡이 되지 않았다.

남자아이의 불굴의 의지는 도대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져있던 배드민턴 채로 칼싸움을 부리기도 하고

화단의 돌멩이들을 인정사정없이 집어던져도 

남자아이의 얼굴에는 점점 더 악기가 더해갔고,

어느덧 쫓기고 쫓는 서로의 상황이 변질되고 있음을

느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인정하기 싫었다.

아니, 무서웠다.

생명보호에 대한 책임감과 동정심이

한 공격체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으로 변하고 있었다.


주차장의 구석에서 구석으로

몰이를 당하고 있는듯한 커다란 직감이 날 눌러왔을 때,

머리에 테이프가 붙여진 오리들은 저 멀리 날아간 지 꽤 지난 것 같았고

오롯이 나만이 거대한 오리가 된 것 같았다.






by DALI's Dream Essay (August 1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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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Li's Cube

달리 좋은데 말할 필요 있나